영월 여행 - 월중도이야기

제8면
영월지경도(寧越地境圖)

영월지경도 위치
영월지경도 위치

 개요 

  • 영월지경도(寧越地境圖)는 월중도의 여덟 번째 그림이다. 영월부 읍치(邑治)를 중심으로 산의 위치와 이름, 강의 흐름과 이름, 단종 역사유적, 역원(驛院) 등 교통로, 면(面)의 이름과 위치, 창고의 이름과 위치, 인근 접경지역과의 거리를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그려진 그림이다. 
  • 영월부 읍치의 주산(主山)인 발산과 북면의 마차리로 넘어가는 분덕치는 뉘어서 그렸고, 나머지 산들은 보는 사람의 시선을 중심으로 그렸다. 육로는 붉은 선으로 표시하고 읍치의 부내면(府內面)을 제외한 6개 면의 위치와 이름, 정북(正北)을 중심으로 오른쪽 방향 순으로 12간지(干支)를 사용하여 방위를 표시하고, 여덟 방향의 인접지역과의 경계를 지명과 거리로 표시하였다.

 원문 해설 

  • 영월지역은 동서가 200리, 남북은 70리 이다. 면(面)이 7개, 역(驛)은 2개, 창고가 4개이다.
  • 백성의 집은 2,635호로, 인구수는 남자가 4,387명, 여자가 4,563명이다. 
  • 논은 36결(結:농토의 면적 단위)이고 밭은 457결로 각종 환상곡(還上穀:각 고을의 사창(社倉)에서 백성에게 곡식을 빌려 주었다가 가을에 거둬들이는 곡식)은 2만 1천 8백석이다.

 그림 해설  

  • ‘읍치’안에는 단종의 능인 ‘장릉’이, 서쪽 서강 변에는 청령포가 그려져 있다. 
  • 인접지역과의 경계와 거리는 정북을 중심으로 오른쪽 방향 순으로 여덟 방향을 표시하였다. 정북(正北) 방향의 평창 경계까지는 40리, 북동 방향의 정선 경계까지는 100리, 정동(正東) 방향의 안동 경계까지는 150리, 남동 방향의 순흥 경계까지는 60리, 정남(正南) 방향의 영춘 경계까지는 30리, 남서 방향의 제천과 영춘 경계까지는 40리, 정서(正西) 방향의 원주와 제천의 경계까지는 50리, 북서 방향의 평창과 원주 경계까지는 50리로 표시되어 있다.
  • 7개 면 중에서 ‘읍치’의 부내면(府內面)을 제외하고, 정북 방향의 북면을 중심으로 오른쪽 방향 순으로 천상면(川上面), 상동면(上東面), 하동면(下東面), 남면(南面), 서면(西面) 등 6개의 면들이 그려져 있다.
  • 원(院)은 여행자들의 숙소 역할을 했던 곳으로, 정북 방향의 평창으로 가는 길에 있던 ‘제덕원(濟德院)’과 정서 방향의 원주와 제천으로 가는 길에 있던 ‘용정원(龍井院)’이 그려져 있다. 역(驛)은 표시되어 있지 않으나, 현재의 남면 연당리에는 ‘양연역(楊淵驛)’이, 북면 연덕리에는 ‘연평역(延平驛)’이 있었다. 
  • 창고*는 원문에는 4개로 기록되어 있으나 읍치의 사창(司倉)**을 제외하고 3개가 그려져있다. 하동면의 사창(社倉), 상동면 방향의 동창(東倉)과 서면 방향의 서창(西倉)이다.
  • ‘읍치’ 아랫 부분의 ‘태봉(胎封)’***은 정양리에 있는 정조대왕의 탯줄을 모시던 태실을 가리킨다. 정조의 태실은 일제 강점기에 옮겨져 훼손되었지만, 지금은 정양산성 아래 남한 강이 보이는 곳에 복원되어 있다. 

* 세금으로 거두어들인 곡식을 저장하였다가 서울로 실어 나르거나, 군량미를 보관하는 곳이었다.


** 조선시대에 각 지방에 설치한 곡물 대여 기관이다.


*** 왕실의 태(胎)를 봉안하는 태실 중에서 그 태의 주인이 왕으로 즉위하면 태실을 봉하는 제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