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월 여행 - 월중도이야기

제5면
창절사도(彰節祠圖)

창절사도 위치
창절사도 위치

 개요 

  • 창절사도(彰節祠圖)는 월중도의 다섯 번째 그림이다. 현재의 이름은 창절서원(彰節書院)이다. 
  • 단종을 위해 절의(節義)를 다한 사육신(死六臣), 충신 엄흥도, 박심문, 생육신(生六臣) 중 김시습과 남효온, 등 10인의 신위를 모시는 사당인 창절사와 창절서원을 그린 그림이다. 
  • 창절사는 배견루(拜鵑樓)에서 창절서원까지는 강학(학문연구) 공간으로, 뒤의 삼문에서 창절사까지는 제사(선현봉사) 공간의 역할을 하는, 전학후묘(前學後廟: 앞에는 학문공간, 뒤에는 제사공간)로 이루어져 있는 전형적인 서원의 구조이다. 
  • 오른쪽 아래에는 충신 엄흥도의 충절을 기리는 정려(旌閭:마을 입구에 충신, 효자, 열녀 등을 기리면서 널리 알리고 본받도록 하기 위해 세우는 것, 주로 문의 형태를 띈다)가 그려져 있다.

 원문 해설 

  • 창절사의 방위는 인좌신향(寅坐申向:동북쪽을 등지고 서남쪽을 향함)이며, 능소(장릉)의 입구 밖 3리쯤에 위치해 있다. 
  • 사우(祠宇:사당)는 5칸으로 앞뒤로 퇴칸이 있고 묘(廟:사당)의 좌우에 각 2칸의 협실(夾室:본채에 딸린 작은 방, 곁방)이 있으며 앞에는 삼문(육신사)이 있다. 
  • 강당은 5칸으로 앞에는 퇴칸이 있고 동쪽과 서쪽의 재사(齋舍:기숙사)는 각 5칸이다. 
  • 문루(門樓:문 위의 다락집)는 3칸으로 앞뒤로 퇴칸이 있고 2층의 편액은 배견루이다.

 그림 해설  

  • 창절사도의 내용은 ‘서원’의 구조를 나타내고 있다.* 창절서원의 현판은, 1791년 강원도 관찰사 윤사국이 썼다.** 육신사와 창절사의 현판은, 사육신인 충정공 박팽년의 후손으로 1791년 단종과 관련된 역사유적을 정비하고 월중도를 보고하는 책임을 맡은 영월부사 박기정이 쓴 것이다.
  • 창절사는 원래 육신사였다. 1709년(숙종 35년) ‘창절’이라는 사액을 받아 창절사가 되었다.

* 창절서원의 입구인 배견루는 외삼문의 기능을 하는 2층 누각이다. 외삼문인 배견루를 지나면 좌우에 기숙사의 기능을 하는 동재와 서재, 강학을 하는 교실인 창절서원이 있다. 


** 뒤로 돌아 내삼문인 육신사를 지나면 선현의 위패를 모신 동무와 서무, 정면에는 가장 중요한 10인을 모신 창절사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