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월 여행 - 월중도이야기

제4면
자규루도(子規樓圖)

자규루도 위치
자규루도 위치

 개요 

  • 자규루도는 월중도의 네 번째 그림이다. 관풍헌의 동남쪽에 있는 2층 누각인 자규루를 그린 것이다. 단종은 관풍헌으로 처소를 옮긴 후, 이곳에 자주 올라 소쩍새의 울음소리를 자신의 처지에 비유하는 자규시와 자규사를 남겼다.
  • 1605년(선조 38년) 홍수에 의해 무너져 유실되었으나, 1791년 강원도 관찰사 윤사국이 매몰된 자규루의 터를 찾아 다시 세웠다. 
  • 자규루와 북쪽 모퉁이의 중문까지 이어지는 보도는 관풍헌까지 연결되어 있다.

 원문 해설 

  • 자규루의 방위는 임좌병향(壬坐丙向:북북서를 등지고 남남동을 향함)이며, 관풍헌 동남쪽 10보 거리에 있다. 3칸으로 앞과 뒤에 퇴칸이 있다.
  • 2층은 4면 분합문이며, 가운데에는 왕이 지은 글을 봉안하는 감실이 설치되어 있다.
  • 누 앞쪽에는 삼문이 있고 북쪽 모퉁이에 중문이 설치되어 관풍헌과 통한다. 

 그림 해설  

  • 자규루(子規樓)는 영월객사의 동쪽 대청인 관풍헌 앞에 있는 루(樓)이다. 
  • 강원도 관찰사 윤사국(尹師國)이 자규루를 중건한 사실을 보고하면서, “그 누각은 영월부의 객관(客館) 곁에 있는데, 옛 이름은 매죽루(梅竹樓)였다. 단종이 관풍헌에 머무실 때, 언제인가 그 누각에 와서 소쩍새 소리를 듣고 자규사(子規詞)를 지었는데, 그 가사가 매우 처절하여 영월 사람들이 슬퍼한 나머지 그 누각을 자규루라 이름하였다.”고 기록하였다.
  • 자규류의 옛 이름은 매죽루로, 단종의 자규사와 자규시 이후 자규루로 이름이 바뀐 것 같다. 매죽루는 1457년 이전부터 있던 누각이었지만, 세종실록지리지(1432년)에는 매죽루에 대한 기록이 없다.
  •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군수 신숙근이 세웠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영월군수 신숙근은 1495 (연산군 1년)부터 6년 동안 재직하였으므로 이 기록은 ‘신숙근이 훼손된 자규루를 다시 세웠다’고 해석하는 것이 적합할 것이다. 
  • 선조실록 1605년(선조 38년) 7월 23일 기록에 의하면, “강원도 영서의 영월 등에 7월 20일 밤 큰 홍수가 져 객사와 관청 등을 휩쓸어 버렸고, 영월은 인가가 3백 39호나 떠내려 갔다”는 내용에 있어 자규루(매죽루)는 이 시기에 폐허가 된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 1791년(정조 15년) 2월, 강원도관찰사 윤사국과 영월부사 이동욱이 자규루의 옛터를 찾아 중건하였으며, 판중추부사 이복원(李福源)은 중건 사실을 기록하고, 좌의정 채제공(蔡濟恭)과 이조판서 홍양호(洪良浩)는 상량문을 지었다.*
  • 자규루에는 단종이 지은 자규시와 자규사가 남아있다. 자규루는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26호이다.

* 현재 자규루의 누마루 앞쪽 현판은 정조 때 호조판서 이병모가 쓴 ‘자규루’이며, 누마루 뒤쪽 현판은 강원도 관찰사 윤사국이 쓴 ‘매죽루’이다. 2층 누마루 현판 안쪽에는 2개의 상량문이 있다. 오른쪽 것은 채제공이 글을 짓고 영월 부사 이동욱이 쓴 상량문이고, 왼쪽에는 이조판서 홍양호가 글을 짓고 강원도관찰사 윤사국이 쓴 상량문이 걸려 있다. 또한 측면에는 자규루를 다시 세운 과정을 설명한, 영월부사로 새로 부임한 박기정의 기록이 걸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