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월 여행 - 월중도이야기

제1면
장릉도(莊陵圖)

장릉도 위치
장릉도 위치

 개요 

  • 장릉도(莊陵圖)는 월중도의 첫 번째 그림이다. 장릉도는 장릉* 주변의 산세를 통해 장릉이 명당의 조건을 갖추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 조선 6대 임금인 단종(1441-1457)이 모셔져 있는 장릉을 중심으로,  단종의 극락왕생을 기원하는 원찰인 보덕사, 금몽암, 단종을 위해 충절을 지킨 사육신 6명과 생육신 2명, 충신 2명을 모시는 창절사, 관풍헌과 자규루, 향교, 낙화암, 청령포 등 단종과 관련된 역사유적들을 모두 안내하는 그림이다. 

 원문 해설 

  • 장릉은 둘레가 30리로, 능침(陵上)은 신좌을향(辛坐乙向:서북서에 자리하여 동남동을 향함)이고, 삼면은 곡장(曲墻:굽은 담)으로, 전면에는 혼유석 1좌, 장명등 1좌, 호석 1쌍, 양석 1쌍, 마석 1쌍, 망주석 1쌍, 문신석 1쌍이 있다.
  • 정자각은 능에서 제사지낼 때 사용하는 건물로 모양이 ‘丁’자와 같아 ‘정자각(丁字閣)’이라고 불린다. 장릉의 정자각은 행랑까지 8칸이다.
  • 비각은 비석을 보호 또는 기념하기 위하여 세운 건물로 단종 비각은 1칸이다. 
  • 수라간은 능에서 제례때 제례음식을 데우고 준비한 곳이다.
  • 영천은 한식일에 단종제를 올릴 때에만 사용되는 우물이다.
  • 충신단(배식단)은 홍살문 밖 남쪽으로 몇 걸음 거리에 있고, 세 개의 별단은 꺾어지는 모퉁이에 위치하며 모두가 서향이다. 
  • 장판옥은 충신위 32인, 조사위 186인, 환자군노 44인, 여인위 6인 모두 268인의 위패를 모셔 놓은 곳이다.

 그림 해설 

  • 장릉(莊陵)은 조선시대 왕릉 42기 가운데 유일하게 강원도에 위치해 있다. 다른 왕릉이 서울 주변 100리 안에 있는데, 장릉만이 영월에 위치한 것은 단종의 유배와 죽음 때문이다.**
  • 엄흥도는 단종의 시신을 수습하여 자신의 선산에 매장했는데, 장릉은 그 곳을 능역으로 조성했기 때문에 다른 왕릉과의 차이가 있다.
  • 첫째, 왕인 단종과 함께 충절을 다한 신하들과 사람들의 위판을 함께 모시고 있다.***
  • 둘째, 일반 왕릉의 구조는 홍살문-참도-정자각-능침이 직선형인 것에 비해, 장릉은 홍살문에서 정자각까지 모양의 참도가 있다.
  • 셋째, 정자각에서 보면 능침공간인 봉분이 정면이 아닌 옆으로 배치되어 있다. 
  • 넷째, 정자각에서 보면 가파른 능선 좌측 구릉지에 있다.
  • 다섯째, 능침 공간의 석물 중에 무인석과 봉분을 보호하는 병풍석과 난간석이 없으며, 호석(虎石)과 양석(洋石)도 각 4마리가 아닌 각 2마리만 설치하였다.****

* 한글 ‘장릉’은 3개가 있는데, 혼동을 피하기 위해 지역명을 앞에 붙인다. 조선왕릉 중 유일하게 경기도 밖인 강원도 영월에 위한한 장릉(莊陵)은 조선 제6대왕 단종의 능이다. 경기도 파주 장릉(長陵)은 조선 제16대왕 ‘인조’와 ‘인열왕후’의 능이다. 경기도 김포 장릉(章陵)은 인조의 아버지로 추존왕인 ‘원종’과 ‘인헌왕후’의 능이다.


** 수양대군에 의해 왕위를 찬탈당한 후, 청령포로 유배되었다가 영월객사의 동쪽 대청인 관풍헌에서 거처하다가 운명을 다하였다. 영월호장 엄흥도에 의해 지금의 자리에 묻혔다가 1681년(숙종7년)에 노산대군으로 추봉되어 1682년(숙종8년)에 묘를 조성하였다. 이후 1698년(숙종 24년)에 묘호를 단종으로, 능호를 장릉(莊陵)이라 하면서 왕릉으로 인정받았다.


*** 홍살문(紅살門, 紅箭門)을 중심으로 단종의 공간과 신하의 공간으로 구분하였다.


**** 조선왕릉(朝鮮王陵)은 조선시대 27대의 왕과 왕비, 추존된 왕들의 무덤 42개를 총칭하는 말로, 서울과 경기도에 39개, 강원도 영월에 1개, 북한 개성의 2개가 있다. 2009년에는 대한민국에 위치한 조선왕릉 40기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으며, 장릉(莊陵)은 사적 제196호이며, 매년 한식 때 장릉제례를 행하며 강원도 무형문화재 제22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