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월 여행 - 관광지이야기

단종의 애환이 서려 있는 서글픈 절경
청령포

청령포는 평창강(서강)의 흐름이 만든 퇴적 지형으로 서쪽의 도산(刀山: 육육봉)을 제외한 3면이 서강으로 둘러싸여 있어 물을 건너야만 다다를 수 있는 육지의 고도이다. 1456년(세조 2년) 6월 초 사육신의 상왕복위 운동이 발각된 이후, 단종은 세조의 명으로 상왕에서 노산군으로 강봉되어 이곳으로 유배 와 있다가 비가 많이 내려 영월군 객사의 동쪽 대청인 ‘관풍헌’으로 거처를 옮기게 되었다. 
국가지정 명승지 제50호이며 강원고생대국가지질공원 하천 및 습지 명승지이기도 한 이곳에는 유배 당시의 단종의 생활 범위를 짐작하게 하는 청령포 금표비가 있다. 이 비석은 숭정 99년인 1726년(영조 2년)에 세워진 것으로 ‘단종이 계시던 옛터’인 신성 지역에 대해 사람들의 출입을 금하던 ‘출입금지 표시’이다. 앞면에는 청령포 금표, 뒷면에는 「東西三百尺 南北四百九十尺 此後泥生亦在當禁」(동서삼백척 남북사백구십척 차후니생역재당금)이라는 글귀가 기록되어 있으며 이는 "동서로 300척, 남북으로 490척, 이후 진흙이 쌓여 새로 생기는 땅도 역시 금지에 해당한다“ 는 내용이다. 1척의 길이는 31.29cm이며, 이를 환산하면 동서 94m, 남북 153m로 영조 당시의 청령포의 넓이를 알 수 있다. 이 금표 덕분에 사람들의 출입이 금기시되면서 2004년 아름다운 숲 전국대회에서 제5회 공존상을 받은 청령포의 솔숲이 보전될 수 있었다고 한다.
청령포 금표에서 남동쪽 방향에 있는 단종어가의 담장 안에는 단종의 유배 장소를 알려주는 전면 1칸, 측면 1칸으로 된 「단묘재본부시유지(端廟在本府時遺址) 비각이 있다. 1763년(영조 39년)에 세워진 비석의 앞면은 영조가 친히 쓴 글씨인 「단묘 재본부시 유지(端廟 在本府時 遺址) : 단종이 본부(영월 부)에 계실 때의 옛터」가 음각되었으며, 뒷면에는 「세황명숭정무진기원후삼계미계추문체경서영원영수석 지명 청령포(歲皇明崇禎戊辰紀元後三癸未季秋抆涕敬書令原營竪石 地名 淸泠浦) : 명나라 숭정황제 원년인 무진년 이후, 세 번째 계미년 가을에 눈물을 흘리며 받들어 쓰고 어명에 의해 원영(원주 감영)에서 비석을 세웠다. 지명은 청령포이다.」라고 새겨져 있다. 단묘유지비 주변의 바닥에는 돌로 유배 장소를 표시해 놓았다. 
청령포에는 또한 유배 온 단종의 모습을 보고 들었던 관음송(천연기념물 제349호), 2000년 4월에 복원된 단종어가와 함께 단종이 해 질 녘마다 올라서서 한양을 바라보던 노산대, 한양을 그리며 벼랑 위에 쌓은 작은 돌탑인 망향탑 등 단종의 애환이 서린 유적들이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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