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월 여행 - 관광지이야기

전 세계가 인정한 문화유산
장릉

조선왕릉(朝鮮王陵)은 조선시대 27대의 왕과 왕비, 추존된 왕들의 무덤 42기의 총칭으로, 서울과 경기도에 39기, 강원도 영월에 1기, 북한 개성에 2기가 있다. 2009년에는 대한민국에 위치한 조선왕릉 40기 모두가 뛰어난 문화적 가치를 인정받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개중 영월에 위치한 장릉(莊陵)은 사적 제196호이며, 매년 한식 때마다 장릉 제례를 행하고 있다.
 
풍수지리적 요소 외에도 왕의 방문을 전제로 그 입지가 선정되는 왕릉 중에서 장릉만이 유일하게 도성에서 멀리 떨어진 영월에 위치한 것은 단종의 유배와 죽음에 얽힌 사건 때문이다. 단종은 수양대군(세조)에 의해 왕위를 찬탈당한 후 청령포로 유배되었다가 1457년(세조 3년) 영월 객사의 동쪽 대청인 관풍헌에서 유명을 달리하였다. 세조의 위세가 두려워 수습하는 이 없이 방치되던 단종의 시신은 영월호장 엄흥도에 의해 지금의 자리에 묻혔다가 200여 년이 지난 뒤인 1681년(숙종 7년)에 노산대군으로 추봉되어 1682년(숙종 8년)에 제대로 된 묘가 조성되었고, 1698년(숙종 24년)이 되어서야 묘호를 단종으로, 능호를 장릉(莊陵)이라 하면서 비로소 왕릉으로 인정받을 수 있었다. 즉 단종의 매장은 국법이나 왕의 방문과 같은 사안을 고려하지 못할 정도로 다급한 상황에서 이루어졌으며, 엄흥도 개인의 판단으로 정해진 매장지를 그대로 유지하였기 때문에 왕릉임에도 불구하고 유배지인 영월 땅에 자리하게 된 것이다.
 
장릉은 협소한 기존 위치를 활용하면서 묘를 조성했기 때문에 완벽한 왕릉의 구조를 갖추지는 못했다. 이로 인해 생겨난  다른 왕릉과의 차이점은 크게 5가지이다.
첫째, 단종과 함께 충절을 다한 신하들과 사람들을 함께 모시고 있는 유일한 왕릉이다(홍살문(紅살門, 紅箭門)을 중심으로 단종의 공간과 신하의 공간으로 구분하였다).
둘째, 일반 왕릉의 구조가 홍살문-참도-정자각-능침이 직선형인 것에 비해, 장릉은 홍살문에서 정자각까지 ┏모양으로 참도가 세 개가 아닌 두 개의 길이 놓여있다. 
셋째, 정자각에서 보면 능침 공간인 봉분은 정면이 아닌 옆으로 배치되어 있다. 
넷째, 능침이 완만한 구릉지에 있지 않고 정자각에서 보면 가파른 능선의 좌측 구릉지에 위치해 있다는 것이다.
다섯째, 능침 공간의 석물 중에 무인석과 봉분을 보호하는 병풍석, 난간석이 없으며 호석(虎石)과 양석(洋石)도 각 2마리만 설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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