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월 여행 - 관광지이야기

문화를 캐는 마을
마차리 폐광촌

학문을 갈고 닦아 수양하는 행위를 절차탁마(切磋琢磨)에 비유하듯 무언가를 갈아내는 도구라 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이 맷돌이다. 한때 영월 최고의 탄광촌이었던 마차리에는 산 위에서 마을을 내려다 본 모습이 맷돌과 꼭 닮아 있어 갈 마(磨), 갈 차(磋)를 따 와서 마차리(磨磋里)라 이름지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져 내려온다.
 
탄광이 개발되기 전까지만 해도 불과 여섯 가구 정도만이 살고 있었다는 마차리는 일제강점기인 1935년에 광업소가 개광되고, 광산의 성장과 더불어 1937년 문곡리와 마차리를 연결하는 413번 도로가 건설되면서 각종 서비스 기능이 입지하여 급성장을 이루었다. 마을의 성장과 더불어 인구 또한 급격히 증가하면서 해방 후인 1947년에는 문곡리에 있던 면소재지가 마차리로 이동하고, 1955년에는 북면 파출소가 마차리로 이전되며 1939년에는 우체국과 초등학교가, 1958년에는 중학교와 고등학교가 신설되는 등 명실상부한 중심지로 거듭나게 되었다.
 
탄광촌에는 또한 일본인 관리자들을 위한 양반사택, 일본인 사원사택, 한국인 고원 사택, 광부사택 등의 광산마을이 건설되었다. 도로가 확충되고 광산이 활기를 띠기 시작한 1937년~1938년 사이에 건축된 광산마을은 해발 300m 전후의 산기슭을 따라 지어졌으며 광산의 위치와 가까운 곳에는 광부사택이 위치하였고, 마차리 시내와 가까운 곳에는 고위관리자 사택이 세워졌다. 이들은 대부분 산간의 계곡을 따라 길게 늘어선 형태로 발달했다.
 
이러한 광산마을은 1972년 광산의 폐광과 함께 대부분의 광부사택이 철거되었고 당시의 일부 주민들이 가옥을 매입, 개조하여 주거지로 삼은 광산취락 여섯 가구가 남아 있다. 광부취락이 있었던 사택지역에는 1,000호의 주택에 10,000명 이상의 주민들이 거주하고 있었으나 현재는 24가구에 약 100명의 주민이 농업에 종사하고 있다. 
 
이렇게 옛날의 한적한 모습으로 되돌아갔던 마차리는 2019년 들어 실시된 황금마차리 특화마을 사업으로 마을 곳곳을 정비하면서 도시 재생 문화공간으로 거듭났으며 마차리피자, 마차리 팹랩과 같이 화덕에서 피자 굽기, 콘크리트로 시계 만들기 등 학생들이 다양한 체험을 즐길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하고 있다.



#영월발전소 #중국인 #폐광 #양반사택 #석탄 #광산 #지리 #광물